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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식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제가 생각했을 때 물론 이다!

괴장히 중요한 질문이고, 정말 자신이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커져간 과정이다. 획일적인 학교교육에서 살아남았고, 회사에 들어간 과정이다. 획일적인 학교교육에서 살아남았고, 회사에 들어가 살아남았고, 기성세대의 훈계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힘든 과정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내고 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링이 있다. 이런 변화를 실행하는 데 특별히 유리한 사람이나 불리한 사라은 없다는 것이다. 린치핀은 신비로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에 어울리는 새로운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훈련한 사람들이다. 물론 유명한 농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큰 키를 타고나야 하겠지만, 이 세상은 농국선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신이 타고난 자질과는 무관하다.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과 행동에 달려 있을 뿐이다. 

 

뛰어난 예술가, 작가, 제품개발자, 카피라이터, 발명가, 과학프로세스엔지니어, 요리사들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걸까?

각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인재가 아니다.물론 좋은 학교교육이 뛰어난 인물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교육이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학교가 성공에 도움이 되는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지만, 형편없는 학교가 성공을 가로막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왜 우리 사회는 개개인이 타고난 예술성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부릴까? 어떤 한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예술성을 짓밟아야만 그가 규칙에 비굴하게 순응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선생은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선생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학생들은 삶을 바꿀 수 있다.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선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그런 선생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을 짓밟고 잘라낸다. 학교라는 조직에 관료적이고 평범하고 순응하는 선생들만 남길 바란다.

 

나는 지금껏 자신의 내면에 예술성을 품지 않는 사람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애 우리는 자신이 타고난 본능을 죽이기 위해 그토록 노력을 하는가? 지금도 시장은 우리에게 외친다. 일어나, 튀어라!인간이 돼라! 참여하라! 상호작용하라! 나만의 직관, 혁신, 통찰 때문에 남들이 화를 내지 않을지 걱정하지 마라.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즐거워 할 것이다. 그 정도의 위험은 과괌하게 무릅써라. 사람들은 값싼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단지 그런 선택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예술성을 찾는 데 쏟아붓는다. 더 많은 가치, 더 많은 관계,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하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꿔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찾아 헤맨다. 그런 경험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원한다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