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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식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했다. "생존수단을 생산함으로써 사람은 실제 물질적 삶을 간접적으로 생산하게 되었다."라고 또한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매일 수행하는 일, 돈을 버는 방법 교육, 정치, 동동체의 셩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생산, 순응, 소비의 삷을 강요받아왔다. 만약 생산, 순응, 소비의 세 가지 개면으이 바뀐다면 어떨까? 우리의 세상이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값싼 노동력보다 한 인간의 고유한 목소리와 놀라운 통찰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르크스는 인류가 단일계급사회에서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라는 두 계급으로 분화되어 진화해온 과정을 추적해 설명했다. 부르주아는 공장을 운영하고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 생산수단은 노동자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제공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 공장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부르주아에게 구속되어 힘들게 노동을 한다. 그들에게는 자본이 없고 단결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도 없다, 자본주의가 2000년 이상 발전하고 유지되면서 두 계급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두 계급 중 어는 한쪽에 속했다 하지만 이제 프롤레타리아도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제 노동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있다. 다른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가로막던 장벽, 자본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던 장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제 공장의 역할을 우리 마은이 대신 하단 다면, 다시 말해 시장이 개인의 통찰, 창조, 참여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그동안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자본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토대로 우리 경제 체제와 사회에 세 번째 계급이 생겨나고 있다. 내가 린치핀이라고 부르는 무리들이다.

린치핀은 다른 사람의 기계를 이용해 생산하고, 남들이 시키는 일만을 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ㅣ다. '보이지 아는' 어떤 것에 영향을 미쳐 자신만의 권력과 가치를 만들어낸다

애덤 스미스가 예로 들었던 핀을 만드는 기계를 다시 떠올려 보자.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런 기계를 소유할 수 있다. 혼자 일하든 함께 일하든 누구나 이미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꼭 필요한 사람 린치핀이 될 수 있다.

 

지금껏 우리가 알던 일들은 '출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보수를 지급했다. 손턴 메이는 이러한 시스템을 출근 기반 보상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이제 ABC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출퇴근에 목숨을 거는 일자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성공하는 조직은 차이를 만드는 사람, 대중과 다른 생각을 하느 사람에게 돈을 지급한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일은 누구든 훈련과 보상을 통해 쉽게 익힐 수 있다. 아침마다 동네 커피숍 셔터를 올리거나 발전소의 계기판을 감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낮은 보수를 받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며, 이직률마저 높은 직종이 있다. 바로 '출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한 개인을 평가하는 기중이 되는 직종이다. 정말 좋은 일이랗면 꼭 필요한 사람들, 즉 린치핀으로 채워진다. 이들은 자신이 아니먄 할 수 없는 일을 함으로써 차이을 만들어낸다